휴스턴서울교회를 올 때마다 느끼는 감동 중에 하나가 법석 떨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영성과 프로그램에 의존하지 아니하고,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입니다.
자연스러운 영성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담임목사가 인도하는 매일의 새벽기도회가 없는데도 교회당 문을 열어 놓은 시간 안에 본당 문이 계속 열리면서 기도하기 위하여 꾸준히 들어오는 성도들이 있는 것입니다. 수요 기도회를 설교 없이 간증과 합심 기도가 중심인데도 주일연합예배에 나오는 성도들의 30% 가까이 나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과 목장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걱정하기보다 오히려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고, 기도의 자리에 나오는 목자목녀가 있는 것입니다. 주일연합예배에서 하나님이 주실 은혜를 사모하며, 온전히 마음을 다하여 드리는 사람들이 주일연합예배 출석하는 성도의 30% 이상이 넘고, 봄, 가을에 개강하는 삶 공부에 성도의 30% 이상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세겹줄 새벽기도회를 하면 전 성도의 70% 이상이 당연히 참여하고, 교회의 여러 행사가 있을 때 그것을 위해 많은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생활화된 헌신이란 이런 것입니다. 헌신의 필요가 보이면 자신이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섬겨야 하는 일이 있을 때 그것을 특별한 수고로 생각하지 않고, 일상의 삶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의견이 자기 생각과 다를 때 동의하지 못할지라도 언제든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목회자의 의견을 따라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어떤 행사를 치를 때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고, 자기 일처럼 여기고, 대부분의 성도들이 참여할 뿐 아니라 힘든 일 일수록, 리더들이 앞장서서 하는 것입니다.
휴스턴서울교회는 어떻게 이런 교회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교회 분위기를 넉넉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유급 사역자의 경우 매년 사역 평가를 해서 기대치에 미달하면 해고 시키기도 하고, 목자가 정해진 기간 안에 분가를 하지 못하면 목장을 해체 시켜서 재구성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휴스턴서울교회는 사명 공동체이면서 치유 공동체로서 유능한 사람뿐만 아니라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도 기를 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래서 유급 사역자를 신중히 모시되, 일단 모셨으면 능력이 부족한 것이 발견되어도 성경에 명시된 죄를 짓는다든지, 교회 사역에 큰 피해를 가져오지 않는 한 해고 하지 않았고, 목장의 경우도 오랫동안 분가를 하지 못해도 목장 식구만 괜찮다면 해체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여유를 허락했던 것입니다. 계절에 사이클이 있듯이 믿음도 식었다 뜨거워졌다 하고, 헌신도도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법이기에 식거나 떨어지더라도 너무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고, 회복될 때를 기도하며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졌던 것입니다.
예배도 은혜로울 때가 있고 덜 은혜로울 때가 있고, 설교도 좋을 때가 있고, 안 좋을 때가 있기에 항상 최고의 것, 완전한 것을 추구하다 보면 분위기가 경직되고, 과다한 훈련이나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보고나 평가 시스템 등도 분위기가 경직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성실하게 사역을 해도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상급이 따르는 특권이기에 자발적으로 해야지, 밀려서 하면 오래 못 가기 때문입니다. 새벽 기도만 해도 사람마다 성숙도와 필요에 따라 기도 시간이 다를 수 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는 철저하고, 이웃에게는 관대해야합니다. 자신은 주님 닮으려고 몸부림치지만 주님 닮지 못한 사람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은 은사를 최대한으로 발휘하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 교회도 분위기가 넉넉해지면서 자연스러운 영성과 생활화된 헌신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심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