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를 국어사전에서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질서는 어디에서나, 무엇을 하든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크고 작은 혼란이 있게 될 것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질서를 처음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그 질서를 가장 잘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질서의 하나님으로 부르게 됩니다.
처음으로 질서의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천지 창조입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그 정확한 순서나 정확한 차례를 보면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그 순서대로 정확하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후에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질서의 하나님을 보게 되는데 그 중에 가장 큰 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의 질서입니다. 하나님은 권위의 질서를 어떤 질서보다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 아래 자녀가 있게 하셨고, 국가에서는 왕의 권위 아래 국민들이 있게 하셨고, 일터에서는 주인의 권위 아래 하인이 있게 하셨고, 교회에서는 리더의 권위 아래 성도가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권위의 질서가 잘 지켜질 때 가정은 화목했고, 국가는 평화로웠으며, 일터는 행복했고, 교회는 성장했습니다. 이것은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권위의 질서는 어느 때에라도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질서의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질서의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28년의 역사 속에서 한 번도 성도와 성도가 분열하여 깨진 적이 없고, 목회자와 성도가 갈등을 겪지 않으면서 오늘의 건강한 교회를 이루어 올 수 있었던 것도 어떤 교회보다 권위의 질서가 잘 지켜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그래야 합니다. 권위의 질서가 무너지는 순간 교회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이 아니라 마귀가 활동하는 무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권위의 질서가 시작되는 곳이 목장입니다. 목장에서부터 권위의 질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목원들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목자목녀의 권위의 질서 아래 있어야 합니다. 본인들의 생각이 있고, 본인들의 가치와 맞지 않을 때에도 권위의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을 못하겠다고 목장에 참여하지 않거나 자기주장을 계속하면서 목자목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는 것입니다.
부흥회 간 교회에서 목자 목녀와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부부를 만나서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만나보니 정말 괜찮은 부부였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에 합당한 부부였습니다. 저의 권면은 목자목녀의 권위의 질서에 무조건 순종하여 목자목녀의 인정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자목녀의 축복을 받으며, 분가하여 목자목녀로 세워지라고 했습니다. 그런 후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세우고자 하는 목장을 세워가라고 했습니다. 후에 들은 이야기는 끝내 목자목녀의 권위의 질서에 순종하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키다 교회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많이 안타까웠고, 많이 아쉬웠습니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이 우리 교회에는 없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권위의 질서에 순종했을 때 그는 이스라엘의 전무후무한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순종하지 않으면 성장의 기회도 없다는 것을 언제든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쓰고자 하실 때 그 사람 위에 있는 사람을 통하여 쓰신다는 것을 언제나 잊지 않아야 합니다. 심목사